[서울메이드칼럼] '국밥'에서 발견한 서울 푸드문화 경쟁력

오피니언 입력 2020-04-12 21:22:49 수정 2020-04-13 11:10:25 이민주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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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서울메이드]

[편집자주 :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문화·산업적 가치를 조명하는 '서울메이드 칼럼'을 연재합니다. 학계, 산업계 등 각계 전문가들이 필진으로 참여합니다. '서울메이드'(SEOUL MADE)는 서울의 문화, 제조 등의 융복합적 가치를 아우르는 통합 브랜드입니다]

 

박찬일·이탈리안 음식 전문 셰프



서울의 노포 식당이 고마운 이유는 그들이 지켜온 서울의 옛맛이 미래 서울의 맛으로 발전되기 때문이다. 서울의 옛맛은 어떻게 내일의 맛으로 이어지는가.


새벽 4시. 종이 치고 도성의 문이 열렸다. 성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달구지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수직(문지기)들이 소리를 질렀다.


“줄을 서서 들어오시오!” 


딸랑거리는 워낭 소리가 요란했다. 나무꾼들이 소를 어르는 고함이 뒤섞였다. 동대문의 그들은 멀리 양평과 가평, 서대문 쪽에는 파주에서 무악재를 넘어온 이들이었다. 도성 안에서 열리는 시전(柴廛), 나무장을 향한 발걸음이 빨라졌다. 곧 육의전 옆, 시전에 나무를 사러 온 관노들이 즐비할 터였다. 


당시 연료는 나무나 숯이었고, 열효율이 높지 않았다. 나무꾼들이 달구지를 몰아와야 도성의 에너지 사정이 돌아갔다. 그들이 나무를 부리고 나서 받은 돈으로 사먹는 것이 해장국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외식 산업은 바로 해장국, 장국밥이 되었다. 병자호란 이후에 활발해진 상업은 주막과 같은 개인 영업을 활성화시켰다. 그곳에서 파는 음식도 장국밥이었다.


다시 도성 안 무교동과 다동. 새벽 어스름에 사내들이 하나둘 색주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거나 도박을 하던 이들이다. 그들이 찾아든 집에서는 바쁘게 불을 때서 가마솥을 끓였다. 구수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술국을 파는 집이었다. 소뼈와 콩나물, 우거지를 넣고 된장을 풀었다. 밤새 허기진 쓰린 속을 다스리는 술꾼들이 금세 술청을 채웠다. 조선의 새벽 도심이 돌아가는 200년 전쯤의 풍경이다. 


서울의 오래된 음식이 무엇이냐 물으면 제일 먼저 탕, 즉 국밥을 들게 된다. 사실 전국적으로 가장 오래된 음식은 국밥이다. 일하는 이들의 노동밥이기도 하고, 외식의 핵심 아이템이었다. 평소 먹기 어려운 소나 돼지를 푹 삶아 국물을 내고, 고깃점을 얹어 내는 국밥은 간편해서 널리 퍼졌다. 임금도 5찬, 7찬으로 밥을 먹던 조선 후기의 사정을 볼 때, 국밥에 김치보시기 하나 놓고 파는 외식은 민중의 음식으로 딱 알맞기도 했을 것이다. 


◆ 서울 평민들의 소울푸드 '국밥' 


나는 10년 전부터 서울의 노포 식당을 취재했다. 서울의 전통 음식, 100년 노포는 죄다 국밥이었다. 이문설농탕, 청진옥, 하동관. 그 뒤를 냉면의 우래옥, 불고기의 한일관 등이 이었다. 냉면은 평안도 음식이었지만, 일찍이 서울에 진출해서 서울화되었다. 해장국, 곰탕, 설렁탕으로 이루어진 국밥 삼총사에 냉면, 불고기는 서울의 노포를 구성하는 핵심 종목이 되었다. 인터넷 시대, 블로거의 대활약을 거치면서 서울의 깍쟁이 미식가들이 알음알음 찾던 가게들이 명망을 더 크게 얻었다. SNS는 노포 대유행의 전조였다. 서울시, 문화관광부 같은 관에서도 노포 식당에 인증제를 시작했다. 이제 노포는 유행과 현상을 넘어 굳건한 성채가 되었다. 이전에 끌어온 100년, 앞으로 100년을 감당할 기세를 얻었다. 


‘탕스플레인’, ‘면스플레인’. 이 신조어는 국밥과 냉면이 어떻게 새로운 세대로 넘어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열쇳말이다. 하동관에 가면 온갖 주문법이 있다. 이를 외우거나 한 번쯤 시도해봐야 진짜 ‘국밥충’이 된다. “민짜!”라거나 “맛뵈기”라고 하동관식 주문법을 외치는 순간, 우리는 백 년의 시대를 한 번에 관통하는 국밥의 흐름에 동참하게 된다. 그것을 SNS에 올리고 공유하면서 국밥의 ‘탕스플레인’은 내밀한 단골들의 주문법을 넘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입술로 냉면을 끊어라, 가위는 절대 불가!”라고 말하는 면스플레인을 더 이상 잔소리라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냉면광들의 비밀 서약을 넘어 대중의 표준 정서가 되었다. 작년 여름부터 불기 시작한 국밥과 냉면의 시대는 이런 심상치 않은 흐름에 편승한 것이다. 


사실 국밥이 하동관만의 고유한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서울의 국밥이 공히, 적어도 200년 전부터는 이어오던 방식이었을 것이다. 서울의 고도성장기였던 1960~1990년대에 이런 국밥이 유사한 방식으로 팔렸다. 그러다가 하나둘 사라졌고, 하동관 방식만 살아남았다. 곰탕은 하동관이 되었다. 


◆ 젊은 요리사들, '국밥 업그레이드' 시작 


그런 고유성에 대한 오마주랄까. 비슷한 국밥들이 새로 나타난 건 젊은 요리사, 기획자들의 손에 의해서였다. 소를 다루는 합정옥, 평화옥에 돼지고기를 변주한 국밥을 내놓은 옥동식, 광화문국밥 같은 가게들이 그 선도자들이었다. 이후에도 수많은 국밥이 세련된 방식이되, 노포를 카피오마주이거나하는 방식으로 서울에 문을 열었다. 이른바 ‘업자’들까지 이 흐름에 끼어들었다. 서울은 그리하여 바야흐로 ‘국밥 도시’가 되었다. 양식과 일식의 공세에 어디로 갈지 모르던 한식이 길을 낸 느낌이었다. 서울은 그렇게 국밥의 부활을 받아들였다. 새로운 ‘선수’의 등장으로 말이다. 

 

조선 말, 대한제국 시기에 이미 서울냉면이 있었고 다수는 평양식을 표방하는 집들이었다. 그런 냉면집들은 모두 사라졌고, 전후에 이북 피난민에 의해 재편되었다. 서북관, 우래옥이 그 대표 주자였다. 전후 피난민들은 서울로 몰려왔다. 평안도 사람들은 억척스럽게 시장에서 장사로 돈을 모았다. 그들이 향수를 달래는 공간이 바로 냉면집, 북한 음식점이었다. 그들을 겨냥한 새로운 업소들이 수없이 생겨서 대활약했다. 1980년도에 을지면옥, 평양면옥, 필동면옥이 문을 연 것은 그 흐름에서 중요한 역사가 될 것이다. 실향민에 의해, 실향민 손님을 주력으로 발전한 평양냉면집은 서울 토박이, 그리고 서울을 새로운 고향으로 삼은 지방 이주민들이 즐겨 찾는 전통적인 식당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이런 역사는 1970년대~2000년대 초반까지 고착화되었다. 두어 해 전의 평양냉면 대열풍이 불기 직전까지는...


◆ '냉면 과학화' 주목해야


냉면은 원래 정치적인 산물이다. 실향, 월남, 이북 같은 이데올로기적 정서가 배어 있다. 남북회담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면서 평양냉면은 그 정치적인 면모를 과시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위해 판문점으로 옥류관 냉면을 날랐다. 북쪽의 종사자들은 마치 팔만대장경을 옮기는 승려 같은 표정을 지었다.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수반이 평양의 냉면을 시식하기는 했다. 그러나 판문점에서 수반이 냉면을 나눠 먹는 장면은 사람들을 다시 ‘냉면광시대’로 끌어들였다. 


원래 평양냉면은 기술 전수자가 아주 적다. 직원은 특정한 파트에서만 근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모든 제조 공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평양냉면의 특성 때문에 함흥냉면과 달리 신규 업소가 거의 생기지 못했다. 그러나 면스플레인 시대는 필연적으로 용감한 ‘아이들’을 배출했다. ‘전수된 비밀에 접근할 수 없으면 내가 창조한다!’ 그들의 모토였다. ‘머릿속으로’ 냉면을 만들어서 ‘식탁 위에’ 실제로 냉면을 올리게 되었다. 그 밑바탕은 “모든 요리는 과학이다”라는 훈련을 받은 신세대 요리사들의 이데올로기였다. 고기는 어떻게 삶으며, 메밀면은 어떻게 뽑으며, 김치는 어떻게 담그는지 과학으로 해석하는 일군의 선수들이 그 몫을 맡았다. 핏줄로 전수되는 전통의 평양냉면과는 다른, ‘평양식’이 아닌 그냥 ‘냉면’의 시대가 온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서울의 냉면을 이끌어갈 것이라는 데 이견을 달 수 있을까. 


노포는 지난 시대를 이끌어온 서울 음식의 역사다. 이제 다시 역사를 쓸 새로운 서울 음식점들이 생겨났다. 다시 100년이 지나면 그들도 노포가 될 것이다. 살아남는다면, 서울 시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본 칼럼은 서울산업진흥원(SBA. 대표 장영승)이 발간하는 <SEOUL MADE 매거진>의 'SEOUL MADE 칼럼'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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