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아름다운 폭력이란 없다

경제·사회 입력 2015-06-19 18:10:42 이재유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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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소용돌이 속 타인에 가해진 폭력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일' 감싸지만 그럴싸한 핑계로 악행 정당화 한것

최고 역사서 '포스트워'의 저자 주트… 제자와 나눈 마지막 정치담론 엮어


"20세기는 파국적인 세계 대전으로 시작하여 그 시대의 신념 체계 대부분이 붕괴하면서 끝났다. … 아르메니아인 대학살부터 보스니아 학살까지, 스탈린의 권력 장악에서 히틀러의 몰락까지, 서부 전선부터 한국 전쟁까지 20세기는 인간의 불행과 집단적 고초가 끊이지 않는 이야기였으며 … 17세기의 국제적인 무질서와 폭력으로, 250년간 국제 질서의 안정을 가져온 베스트팔렌 조약(1660) 이전으로 되돌아간 절망스러운 회귀였다."(P488~499, 후기 중)

2차대전 후 유럽에 관한 최고의 역사저술로 꼽히는 '포스트워'의 저자이자, 정치·사회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토니 주트는 지난 2008년 루게릭병을 진단받는다. 온 몸의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며 결국 사망에 이르는 퇴행성 신경질환. 반년 여 남은 시간에 그는 제자이자 젊은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와 함께 20세기 정치사상에 대한 대담을 이어간다. 인공호흡장치에 의존하며 전동 휠체어에 앉아서. 그렇게 이 책은 그의 마지막 강의이자 저술이 됐다.

그의 관심은 19세기 말에서 최근까지 자유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민족주의·파시즘 등에서 말하는 권력과 정의, 그것을 주제로 한 서구 근대 정치사상사였다. 매 장마다 그의 자전적인 서술로 시작해, 여기서 파생되는 당대 사회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20세기 정치사상의 한계와 도덕적 실패를 지적한다.

특히 토니 주트는 마르크스주의의 실패와 이에 동조했던 지식인의 침묵에 대해 비판한다. 체제의 작동 방식과 모순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마르크스주의에 매료된 많은 지식인들은 지식인 공동체로서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는 '종교적' 세계관에 열광했다. 하지만 1936년 스탈린의 시범 재판과 1939년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 그리고 헝가리 봉기(1956년)·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의 봄'(1968년)에 대한 소련의 무력 진압 등을 거치며 환상은 깨졌다. 일부는 잃어버린 신념을 반성하고 비판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수가 남았다. 이들은 혁명 가운데 타인의 운명에 가해진 폭력을 '미래를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오믈렛을 만들면서 달걀을 살살 다룰 수는 없다'며. 주트는 바로 이 지점, 미래의 이름으로 현재의 악행을 정당화한 것을 지식인의 윤리적 문제로 봤다. 2006년 이스라엘-레바논 전쟁 가운데 민간인 피해에 대해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새로운 중동의 탄생을 알리는 산고'라고 말한 것과 다를 게 뭐냐는 얘기다.

이 외에도 그는 국가의 시장개입에 반대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외부의 위협을 강조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세력에 대해 경계한다. 또한 평생직장과 은퇴 후 안락한 삶이 보장되지 않는 '공포의 시대'에 공공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라고 권한다. 역사와 정치를 넘나드는 담론은 끝없이 확장되고 만만치 않은 지적 소양을 요구한다. 책을 읽을수록 참고도서 목록도 늘어가지만, 시간을 낼 만한 가치가 있다. 2만5,000원.

이재유기자 0301@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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