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 국도 이야기] 평화 최전선 ‘고성’

이슈&피플 입력 2022-09-26 17:51:29 수정 2022-12-13 08:10:51 박진관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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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포화 속에서 민족의 아픔을 고스란히 지켜본 바다

박상철 화백 作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해 온 서울경제TV는 지난해에 이어, 우리가 가볍게 지나쳐 온 역사 유적과 유물에 대한 아카이브 기획 취재 '골목의 역사를 만나다'를 통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과거의 아픈 흔적들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고 오늘의 대한민국이 누리고 있는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과 문화적인 성과들이 험난한 시대를 지나온 선조들의 의지와 극복 과정을 통해 이루어 진 역사임을, 자라나는 미래의 세대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통한 이번 기획취재물 '7번 국도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6.25 전쟁'을 주제로, 흔히 관광지로만 알고 있는 동해안 7번 국도의 잊혀 가고 있는 이야기를 발굴하고 70년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전쟁의 아픈 흔적들의 의미를 되새기며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역사의 증거로써 보존해 나가야 함을 강조하려 합니다.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꽃다운 청춘의 시대를 바쳐야 했던 아들과 딸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 나라와 가족을 지켜낸 책임감과 끈기, 그 역사적인 삶의 속살들을 이제 하나씩 시작합니다. <편집자주>
 


전쟁의 참화와 지루했던 정전을 위한 협상의 시간, 그리고 휴전, 그 속에서 통일에 대한 염원을 한 번도 놓지 않은 도시가 있다. 손을 내밀면 금방 닿을 듯 가까워서 금강산의 수려함을 직접 눈으로 느끼고 언제든 오를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지게 하는 곳, 바로 대한민국 최북단 강원도 고성이다.


고성에는 지금도 전쟁과 분단의 파편들이 너무도 많이 남아있다. 고성군 현내면에 위치한 ‘6·25 체험 전시관’은 그 아픈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둔 기록관이다.

특히 이곳은 6·25 전쟁 당시 위기에 빠진 한국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유엔 참전 국가들의 자료들과 함께, 전쟁이 발발한 이유부터 그 전 과정을 잘 이해할 수 있게 각종 사진과 자료, 유물을 전시해 동족상잔의 비극을 교훈으로 전하고 있다.
 


6·25 전쟁은 남북 간 만의 전쟁이 아니었다. 중국군이 참전을 했고, 유엔군도 16개 국의 전투부대와 5개 국의 의료지원 부대가 참전을 했던 국제전이었다. 또한 미국과 소련이 극렬하게 대립각을 세우며, 냉전체제의 주도권 경쟁을 벌이던 시절 벌어진 전쟁이다 보니 한국군과 유엔군 포함 약 77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큰 전쟁이었다.


사실 6.25 전쟁은 1953년의 정전협정, 말 그대로 전쟁이 ‘정지’되었을 뿐,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전시관에는 전쟁 당시의 전사자 유해도 전시되어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지금까지 찾은 유해는 약 10,000구 정도, 그 중에서 가족을 찾은 유해는 겨우 140여 구 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앞으로 찾아야 될 전사자의 유골도 약 130,000 구에 달한다. 전사자들의 형제 자매와 후손들의 기억이 없어지기 전에 발굴 작업이 좀 더 속도 있게 추진되어야 할 이유다.
 


북위 38도에 위치하고 있는 통일전망대에서는  금강산의 마지막 봉우리인 구선봉과 바다 위의 금강이라 불리는 해금강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다. 맑은 날에는 비로봉도 보인다.


지난 1998년 남북 분단 반세기 만에 높은 곳에 올라 오매불망 그리움으로만 바라보던 북녘땅 금강산을 향한 바닷길이 열렸다. 그리고 2003년, 바다에 이어 육지 길이 열리며, 금강산 관광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당시 고성 현내면 명파리에 매년 23만 명 이상이 방문할 만큼 고성도 호황을 맞이했다. 하지만 2008년 금강산 관광객이었던 박왕자씨 피격 사망 사건 이후 관광이 금지되면서 남북은 또다시 냉전의 시대로 돌아가야 했다.
 


2005년 복원된 동해선 선로. 2년 뒤인 2007년 시험운행이 이뤄졌다. 남측의 새마을호는 남방한계선을 넘어 북한의 개성역까지 다녀왔고, 북측의 열차는 고성 제진역에 도착해 희망을 남기고 돌아갔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돌아간 북측의 열차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반질반질해야 할 철로는 녹슨 채 내버려져 있다.


고성군에 위치한 제진역에서 금강산청년역까지 거리는 고작 26km에 불과하다. 기차로 달리면 정차할 겨를도 없이 한달음에 닿을 거리지만 지금 두 역 간에는 가장 두텁고, 가장 먼 철로가 놓여 있다.
 


제진역은 북으로는 더 이상 휴전선에 막혀 가지 못하고, 남으로는 선로가 없어 갇혀버린 고립된 역이다. 고성 또한 군사분계선과 바다, 끊어진 철도와 고속도로로 인해 ‘내륙의 섬’이라고 불릴 만큼 제진역과 비슷한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제진역은 고성의 축소판이다. 또 전쟁의 상흔이 깊게 남아있는 곳이며, 냉전의 유물을 품고 있는 가슴 아픈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흔들림 없이 통일 염원의 불씨를 간직하고 있고, 7번 국도 그 어느 곳보다 평화를 소원하는 땅으로 북쪽을 향해 온 가슴을 내어 줄 준비가 되어 있는 곳이다.


평화의 최전선에서 고성은 지금도 북으로 달려나갈 그날을 고대하고 있다. /박진관 기자 nomadp@sedaily.com


<7번 국도 마지막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도움말 : 권기봉 작가, 이훈 이야기경영연구소 대표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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