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6주년, 골목의 역사를 만나다.] 식량 수탈의 한(恨), 군산

이슈&피플 입력 2021-11-13 09:00:00 수정 2021-11-30 08:22:27 박진관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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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경제 정보를 정확하고 빠르게 제공해 온 서울경제TV는 2021년 광복 제76주년을 맞이해서, 마치 우리 주변에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가볍게 지나쳐 온 역사적 유적과 유물에 대해 ‘아카이브 기획 취재’를 통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과거의 흔적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봄으로써 오늘의 대한민국이 누리고 있는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과 문화적인 성과들이 험난했던 그때를 살았던 선조들의 의지와 극복 과정이 없었다면 어림없는 일이었을 수도 있음을, 자라나는 미래의 세대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이번 기획 취재는 임진왜란과 구한말 혼란기, 일제치하를 거치면서, 반드시 영광스럽지만은 않은 유적과 유물일지라도 역사적 고초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면에 간직되어 온 아픈 흔적들조차 끌어내고 보존해 나가야 함을 강조하려 합니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친족보다 오히려 가깝게 지내는 이웃이 더 소중히 느껴질 때가 있듯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잊힐 수밖에 없게 되고, ‘아픔’이 담긴 유물이라는 이유로 관리가 소홀해진다면 자칫 그 과오는 반복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간도, 연해주, 사할린으로 쫓기듯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한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징병과 위안의 이름으로 꽃다운 청춘을 버려야 했던 아들과 딸들, 삭풍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 나라와 가족을 꿋꿋이 지켜내 온 우리 민족의 강인한 흔적들, 그리고 이역만리 100년의 시간을 돌아, 할머니 할아버지의 나라에 다시 둥지를 튼 골목의 고려인 식당들 모두가 우리 민족이 간직해야 할 아픔과 영광의 역사들입니다. <편집자주>
 


대한민국 최대 곡창지대인 김제 만경평야.


이 비옥한 땅에서 조선인들이 키워낸 소중한 쌀은 수확하기가 무섭게 군산항에서 배를 타고 사라졌다. 드넓은 평야 가득 백미를 생산했으나 일본인 대지주의 높은 소작료로 인해 굶주림에 치를 떨어야 했던 억울했던 시대. 일제강점기 조선인 중 약 30%는 1년 내내 육류, 생선, 계란 등 어떠한 동물성 단백질도 구경하기조차 힘든 시대였다.


주식으로 쌀만 섭취하는 경우는 전체 조선인의 13%정도에 불과했고, 대다수가 보리와 잡곡만으로 다음 해 수확기까지 아껴 먹으며 버텨 내야하는 고난의 반복이었다.


1899년 개항한 전라북도 군산, 식량 수탈의 한은 아직도 저 평야에 알알이 박혀 있다. 호남 평야지대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였던 이곳은 식량 수탈의 아픔과 항거의 역사가 아로새겨진 도시다.


비옥한 평야지대이면서 바다에 인접해 있는 위치의 군산은 식량수탈의 최전선으로써 일제에 억울하게 활용되기 시작한다. 일제가 주도한 산미 증식 계획, 농촌진흥운동으로 생산된 양질의 미곡은 철도와 도로를 통해 군산으로 집산됐고, 곧바로 항구에서 대형 선박을 타고 오사카, 고베, 도쿄 등으로 이출됐다.
 

일제는 조수간만의 차가 심했던 군산항에 부유구조물을 바다에 띄우는 형태로 6개의 부잔교를 설치해서 언제든지 대형선박이 접안하고 식량을 실어나를 수 있게 했다.


조선총독부 농립국 기록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2년 뒤인 1912년도에 비해 1928년에는 쌀의 수확량이 50%가량 늘어났다. 반면에 일본으로 수탈해 나가는 물량은 3배나 증가해 조선인들의 끼니는 너무나 초라하고 부족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막대한 부를 축적해 나간 일본인들은 ‘부자로 살만한’ 군산에 터를 잡아, 집을 짓고 아예 정착해 살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포목점을 운영하며 부를 일궜던 히로쓰 게이사브로의 일본식 가옥이 군산 시내 신흥동에 그대로 남아있다.
 

 

1930년대 통계를 보면 군산부의 토지 중에 80%가 일본인의 소유였고, 근처 옥구 지방의 경우는 농경지의 60%가 일본인의 소유였으며, 우리 농민들은 매번 약 60~70%나 되는 소작료까지 짊어진 채 농사를 지어야 했다. 


지금도 군산세관, 조선은행 조선미곡창고,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등 일제가 미처 지우지 못하고 떠난 식량 수탈의 흔적들은 군산 곳곳에 아프게 새겨져 있다.

군산 ‘임피역' 박상철 화백作

 

시간이 멈춘 듯 1930년대 역사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는 고요한 폐역인 임피역은 일제가 호남평야 일대에서 수탈한 농산물을 군산항으로 옮기는데 사용했던 군산선 철도의 작은 간이역이다.


임피역 주변으로 그 당시에는 여러 개의 쌀 저장고까지 있을 정도였고, 일제는 조선인들의 노동력과 피와 땀방울까지 함께 수탈해갔다.


일제 강점기 식량수탈의 흔적을 제 몸의 일부로써 안고 있는 군산. 저 잔잔하고 드넓은 바다도, 초록의 아름다운 평야도 군산의 한을 위로해 줄 순 없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잊을 수 없는 수탈의 시대. 군산은 지금도 남아있는 임피역과 일제가 남겨놓은 잔재들을 통해 그때의 아픔을 가슴 저리게 기억하고 있다. /박진관 기자 nomad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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