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불확실한 시대에 가장 확실한 인재 교육법, 코로나의 중심에서 다시 독서를 외치다

오피니언 입력 2020-04-13 12:46:41 enews2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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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 에이젯(AJET) 창의융합학원 예술과학센터(AS Center)원장이 코로나로 어수선한 교육의 현장에서 좀더 빠르게 도래할 4차 산업혁명시대 대비 창의융합형 인재교육 방법 중 하나로 독서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2020년 봄, 온 나라가 아니, 온 세계가 혼돈에 빠졌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을 ‘팬데믹 현상’으로 정의한 것을 언급하지 않아도 한동안 인류는 코로나19와의 사투를 벌일 것임은 분명하다. 모든 산업과 경제의 기반이 지각 변동을 예고하며, 이제 역사는 기원 전(Before Christ)과 기원 후(A.D)가 아닌 ‘코로나 이전(Before Covid-19)’과 ‘코로나 이후’로 나뉠 것이라는 진지한 농담도 나오고 있다. 지구 곳곳에서 전통적인 교실 수업을 하는  학교들의 휴교령이 줄을 잇고, 세계적으로 온라인 강의, 화상 수업의 도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바야흐로 교육계에도 진정한 4차 산업 시대에 적합한 교육 플랫폼 마련이 앞당겨질 것이란 예측이다. 한국의 공교육 역시 유례없는 온라인 개학으로, 사교육 시장 또한 기존의 강의식에서 탈피한 다양한 학습 모델 개발을 위해,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 이어지는 양상이다. 코로나의 한 중심인 이 시기, 3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에서 탈피해 진정한 인공지능 시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으로 본격적인 전환에 박차를 가하는 이 때, 필자는 우리 학생들에게 가장 가르쳐야 하는 것으로 다시 책을, 독서를 말하려 한다. 


2015년 개정 교육과정의 목표는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이다. 교육부에서 정의한 창의융합형 인재란 ‘인문학적 상상력에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추고 바른 인성’을 갖춘 사람이다. 기술의 발달만 쫓아가는 맹목적인 학생이 아니라 인문학을 배우고 그것을 근간으로 사고하면서 다양한 지식을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란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문학의 근간은 바로 다양한 독서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독서를 잘 하는 능력은 어떻게 길러지고, 우리는 어떤 책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접하게 도와주어야 성공적인 독서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점은 독서 교육은 조기 교육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학, 영어, 체육 등 모든 과목의 조기 교육에는 전문가들의 찬반 논란이 있다. 하지만 독서는 돌 이전의 아이에게도 아니 그 이전 태교시절부터 시작하더라고 그것이 해롭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일정 시기 이전까지는 책을 직접 읽히는 것이 아니라 주 양육자가 대신 읽어주는 형태이긴 하지만, 어린 시절 책부터 책을 접한 아이들이 더 독서를 잘하고 좋아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도서관 관장 시절 부모님들에게 종종 “우리 아이는 원래 책 읽는 것을 싫어해요”, “어려서부터 책을 잘 안 읽더라고요” 라는 말씀을 들었다. 책을 좋아하고 책을 잘 읽는 것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능력일까?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책읽기도 의식적으로 가르쳐야 하고 시간을 들여 배워야 하는 영역이다. 세계적인 인지 과학자이자 독서 연구의 대가인 매리언 울프는 ‘인류의 뇌는 본래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0만년이 넘은 긴 인류의 역사 중 인간이 독서를 한 시간은 고작 8000년에 지나지 않는다. 선사 시대 미개한 인류가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농사를 하고, 집을 짓고 사는 문명화라는 발전 과정을 거친 것과 마찬가지로 인류는 원시인 상태의 어지러운 뇌를 독서라는 행위를 통해 구조적으로 정리하고 문제해결을 하게 발전시켰다는 말이다. 매리언은 <다시, 책으로>란 그의 저서에서 스마트폰, 인터넷을 통해 쉼 없이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우리의 뇌가 인류의 가장 기적적인 문명화의 상징인 읽기, 특히 ‘깊이 읽기’ 능력을 상실하고 정리 안 된 상태의 뇌를 유지할 지도 모른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평소 방대한 독서량으로도 유명한 KAIS의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도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그는 마치 영어를 일정 나이 이상에 배운 사람은 의사 소통은 하지만 원어민의 발음이나 뉘앙스를 온전히 모국어와 똑같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처럼, 독서도 일정 나이 이전에 학습하여 내 것으로 온전히 습득하지 않으면 자유자재로 책을 읽고 이해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하다는 다소 파격적인 주장이다. 그래서 그는 12살 이전에 다양한 책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는 교육을 할 것을 강조했다. 두 과학자의 말을 종합하면, 독서란 인간이 타고나는 본능이 아니라 어린 시절 학습을 통해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문명의 발명품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가 어릴 때 책을 가까이 접할 수 있게 도와주고, 조금 더 자라면 서점이나 도서관으로 이끌며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활동들을 하며 마치 영어나 수학을 가르치듯 책읽기도 의도적이고 반복적으로 학습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이 때 반드시 기초에 두어야 할 사항이 있다. 이 모든 독서의 과정이 자기 주도적이고 행복한 경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내에서 선풍적인 어린이 독서 운동을 일으킨 <The Readaloud Handbook>의 저자 짐 트릴리즈는 정말 의미 있게 책을 만나는 한 번의 경험 (one very positive reading experience)이 책을 좋아하게 만든다는 주장을 했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만드는 비결, 평생 책을 읽는 독서가 (life-long reader)로 만드는 비결은 그 어떤 명작도 추천도서도 아닌 ‘야구에서 홈런을 한 방에 치듯이 아이의 취향을 제대로 겨냥한 책 (홈런북)’ 이라고 했다. 필자는 근무했던 사립초등학교와 도서관에서 책을 통해 학생들을 가르칠 때 이런 경우를 많이 지켜보았다. 책에는 별로 관심이 없던 저학년 학생이 그림책 한 권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 독서 캠프 이후 책을 꾸준히 읽게 된 경우, 뉴베리 수상작을 몇 주간 읽는 북클럽 활동을 통해 E.B 화이트의 <The Trumpet of the Swan>을 읽으며, 이 책이 평생 읽었던 책 중 가장 재미있다던 초등 5학년 남학생도 있었다. <빰빠라밤! 빤스맨>이란 우스꽝스런 영어책에 빠져 저금통을 털어 책을 사서 읽을 정도로 몰입했다가 영어에 재미를 붙인 학생, <안나 카레니나>를 열 번도 넘게 읽으며 책벌레가 되었다는 중학생 등등 책 한 권이 준 긍정적인 효과에 대한 증언을 끝없이 말해볼 수 있다. 하나도 일치하는 경우가 없는 이 모든 예들의 단 하나의 공통점은 모두 독서가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에 의해 결정된 다는 점이다. 그리고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자발적인 활동이기도 하다. 한 권의 책을 통한 긍정적인 경험은 ‘슬로우 리딩(한 권의 책을 천천히 시간을 두고 다각도로 읽는 정독 독서법)‘의 예로 잘 알려진 일본의 초등학교의 경우가 유명하다. 이 학교에서는 일본의 근현대사를 다룬 ’은수저’라는 소설책 한 권을 전교생이 함께 몇 년간 정독을 하면서 입체적으로 읽고 다양한 독후 활동을 경험을 했는데 훗날 이들이 자라 일본의 각계각층의 유명인으로 성장했다는 이야기이다. 한국에서도 몇 해 전 EBS 다큐에서 비슷한 실험을 했는데, 한 가지 책을 오래 읽는 경험을 통해 학생은 결국 그 안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는 계기를 갖기도 한다. 책을 읽히지 않으려는 부모님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책을 얼마나 읽혀야 하는지는 한 번 고민해 보아야 한다. ‘서울대 학생들이 읽은 필독서 100권’, ‘초등 3학년 학생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은 분명 좋은 리스트이지만, 그 안에서는 우리 아이에 대한 개별성을 발견 할 수 있는 요소는 없다. 물론 고전의 유익함이나 중요성은 말할 나위 없다. 최첨단의 과학을 논하는 김대식 교수가 가장 영향을 받은 책 중 하나는 그리스의 고전 <오딧세이>이다. 어린 아이들의 고전 이솝우화나 탈무드를 한 번 읽히는 것은 그 어떤 엄마의 잔소리보다 효과적이다. 헬렌켈러나 안네의 일기와 같은 위인전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의 효과이다. 명심보감, 논어, 잠언 등 세상엔 우리 아이들이 알았으면 하는 지혜들이 가득한 욕심나는 고전이 차고 넘친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로 굳이 설득하지 않아도 우리는 고전을 통해 지혜를 얻고 미래를 읽는다.

하지만 책읽기야말로 본질적으로 자기주도적일 수밖에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그 어떤 필독도서, 고전을 성급하게 제시하기 보다는 우리 아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다소 평범해 보이는 책으로 독서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적어도 지금의 우리 아이에게는 말이다. 모든 책은 독자가 읽는 시기에 따라 그 느낌과 메시지가 달라진다. 필자가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어린 시절 계몽사 전집에서 처음 읽었을 때, 가치관이 막 형성되기 시작하는 사춘기 시절 다시 읽었을 때, 그리고 세 아이를 낳고 중년의 나이에 읽었을 때 모두 그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세 번의 경험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깨달으며 삶의 진리를 알아낸 미카엘 천사처럼 인생의 여정 속에서 같은 책을 만나도 내가 아는 만큼, 현재까지 살아낸 만큼 읽히고 이해되는 것이 책이 가지고 있는 미스테리한 힘이자 매력일 것이다. 아무리 우스꽝스럽고 쉬워 보이는 책이라도 스스로 고르고 푹 빠져서 읽은 경험이 있는 아이는 성공한 자기주도적인 독서가로 자랄 수밖에 없다. 오늘 <빤스맨>을 자기 힘으로 즐겁게 읽어낸 아이는 내일은 <오딧세이>를 읽을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좋은 책들을 가까이 둘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책을 좋아하는 어른들의 지도가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남들이 좋다고 하는 백 권의 책을 한 번씩 읽기보다는 나에게 의미가 있는 열  권의 책을 열 번씩 읽어보는 것이다. 백 번을 읽어도 행복해지는 한 권의 책을 만나는 게 돕는 것, 그럴 수 있다고 믿고 기다리는 것이 결국 독서교육의 본질이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독서 교육을 할지 그 방법론을 간단히 전하고자 한다. 이하의 내용은 실제 필자가 독서법을 강연하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구체적인 팁을 모아 엄마표 독서 수업을 진행할 때 언급하는 가정이나 교실에서 당장 적용할 수 있는 중요한 것들이다. 우선 독서 교육을 확인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하는 질문은 금지이다. “그래서 결론이 어떻게 되었지?”, “주인공의 친구 이름은 누구였지?”, 심지어 “오늘 몇 쪽 까지 읽은 거야? 다 읽은 거야?”는 책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는 백해무익한 것들이다. 한편으로는 독서의 중요성과 융합교육이 강화되면서 책을 읽고 퍼포먼스에 준하는 미술활동이나 요리활동 혹은 체험학습을 함께 하는 열혈 부모님이나 선생님들도 있지만 사실 매번 책을 읽고 그렇게 엄청난 활동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할 수는 없다. 20년 아이들을 지도하며 배운 나의 교육법은 간단하다. 그 옛날 책이 처음 만들어 졌을 때의 교육법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바로, 몸으로 책을 읽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입으로 소리 내 읽고(낭독), 손으로 쓰고(필사), 머리로 외우면서(암송) 책의 내용을 익혀야 한다. 물론 여기에 마음으로 느끼기 까지 갈 수 있다면 화룡점정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조선시대 서당에서 글공부를 가르치던 방식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각자의 진도를 가지고 책을 보면서 큰 소리로 외울 때까지 달달 읽고 좋은 내용들을 반듯하게 옮겨 적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책 안의 내용이 내면화 되면서 책을 통한 성공 경험을 맛보게 된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쓰는 독서법에는 초서가 있다. 목민심서를 포함해 492권의 책을 저술한 조선시대의 대학자이자 정치가 다산 정약용은 마냥 배끼는 필사를 넘어서 책의 중요한 부분을 도둑질 하듯이 읽는 ‘초서(抄書)’ 방법을 그의 두 아들에게 권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이해를 위해 중요한 구절, 나중에 인용하고 싶은 구절, 아름다운 글귀들을 따로 노트에 적어놓는데 그렇게 도둑질(?)한 내용이 거의 일 년에 다이어리 한 권씩을 가득 채운다. 앞서 소개한 가장 최신 문명을 이끄는 세계적인 뇌과학자들이 역설적으로 가장 오래된 문명의 수단인 책을 강조하는 것처럼 가장 최신의 독서 교육법 역시 가장 오래된 교수법인 낭독과 암송, 필사라는 점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역사는 반복되고 해 아래 새 것은 없기 때문이다.


전대미문한 바이러스 앞에서 인류는 최첨단 과학을 내세워 신약 계발에 힘쓰지만 한편으로는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다시 꺼내 읽는다.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장애를 가진 아들을 키우며, 자신의 삶의 어려움을 '책으로 버티고, 책으로 구원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지금 코로나가 주는 시대의 우울도 책을 통해 위로 받고,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그 어떤 유능한 미래학자도 ’불확실함‘ 밖에는 확실히 예측할 수 없는 시대. 필자는 다시금 본질로 돌아가 우리의 교육의 중심을 책으로 돌려보길 제언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코로나 예방주사 못지않게 중요한 인지적, 정서적인 면역력을 키워줄 가장 위대한 인류의 유산은 바로 책이기 때문이다.


◆ 김은희 원장은
마포어린이영어도서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에이젯(AJET) 창의융합학원에서 예술과학센터 원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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