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 도장찍은 합의서도 번복가능하다?” 서울시 조정원의 이상한 논리

탐사 입력 2020-02-10 15:02:44 수정 2020-02-21 11:56:31 문다애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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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울경제TV]

[서울경제TV=문다애 기자] A, B가 특정 사안을 놓고 대립하다 합의하고 문서에 사인까지 했다. 그런데 A가 느닷없이 합의 번복을 선언했다. A의 합의 번복 선언은 누가 봐도 법 위반이다. 그런데 분쟁 조정업무를 관할하는 서울시 공정거래분쟁조정위원회(이하 서울시 조정위)는 A의 이 같은 행위에 대해 “그럴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해 편파 조정 논란에 휩싸였다.


◆ 이마트24, 미성년 점주와 합의서 작성하고 일방파기 통보


이는 서울경제TV가 지난달 29일 보도한 ‘[더 탐사]미성년자면 어때?…이마트24, 도넘은 확장’에 관련된 사안이다. 이 보도는 지방에 거주하는 어느 미성년자가 이마트24로부터 매장 오픈을 허가받고 운영하다가 적자가 쌓여 폐점을 요청하자, 이마트24가 거액의 위약금을 요구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보도가 임박한 지난달 13일 이 미성년 점주와 이마트24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합의서의 요지는 이마트24가 미성년 점주에게 위약금을 요구하지 않으며, ‘이번 사안을 언론에 제보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지난달 29일 서울경제TV가 그간 취재해온 내용에 대해 보도하자 이마트24측은 일방적으로 합의를 파기하겠다고 조정위에 통보했다. 점주가 합의를 위반했다는 이유다. 


이 사안에 대해 10일 서울시 조정위는 서울경제TV에 “한 번 (합의서) 도장을 찍었다고 그 다음부터 조정을 절대 못 다투는 게 아니다”며 “한쪽이 문제가 있다 하니 합의를 했더라도 중간에 상황이 바뀌면 다시 합의를 할 수 있고 혹은 한쪽이 어떤 합의 부분을 위반했다고 문제 삼을 수 있다”고 밝혔다. 합의서를 작성했음에도 합의를 번복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서울시 조정원에 따르면 이마트24와 미성년 점주는 언론에 제보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합의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서울경제TV는 조정이 시작되기 전부터 해당 사실을 알고 취재해 왔으며 합의서 작성 이전에 취재된 내용을 보도했다. 점주가 합의를 위반했다는 것은 증거 없는 일방의 주장인 셈이다. 계약서상 관계없는 서울경제TV의 의사가 합의의 주요한 키가 된 것이다.


◆ 서울시 조정원, “합의서 법적 효력 있다”면서도 “합의서 파기 가능” 모순


서울시 조정원은 중립적으로 조정을 진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서울시 조정원은 지난 13일 합의서를 제출 받았음에도 이마트24의 일방적인 주장을 인정해 다시 양쪽의 의사를 조율한다고 나섰다. 서울시 조정원은 “합의서를 받았지만 조정 절차가 다 끝난 게 아니기 때문에 다시 양 쪽의 의사를 묻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조정원에 따르면 조정 절차는 신청인 간 합의서를 제출하고도 최종 심의위원회에서 의결을 실시해 종결해야 끝난다. 그런데 최종 심의위원회가 열리기 전에 한쪽에서 합의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해 서울시 조정원이 양쪽의 의견을 다시 조율해야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합의서를 써놓고도 언제든 합의를 번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서울시 조정원은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양측이 합의서 도장을 찍었다면 합의서 자체의 법적 효력은 발생한다고 인정하고 있다. 합의서의 법적 효력이 발생하는 것과 서울시 조정원의 조정은 별개라고 선을 긋고 있다. 조정을 종결하는 것은 최종 심의 위원회에서 최종의결을 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이마트24가 점주의 합의를 위반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조정원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법원이 내려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사건처럼 합의서 작성 후 합의를 위반했다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 "언론통제 볼모 합의서는 문제"


편파 논란으로 비춰 지는 또 다른 이유는 서울시 조정원이 중간에서 조정을 한다는 명목으로 이마트24의 일방의 주장을 수차례 전달했다는 사실이다. 서울시 조정원은 “기사가 송출됐으니 합의가 무효가 될 수 있다”고 점주에게 말했다. 사실 이 자체로도 점주는 심한 압박을 받았다. 수 개월 간의 분쟁 끝에 합의를 했고, 암 치료에 몰두해야 하는데,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합의를 파기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점주는 29일 당일 수차례 기사를 내려줄 수 없느냐고 호소했다. 기사가 내려가면 다시 합의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들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마트24가 서울시 조정원을 통해 점주에게 기사를 내리게끔 하라고 압박한 꼴인데, 이것이 서울시 조정원의 의도가 아니더라고 점주 입장에서는 '편파적인 행위'인 셈이다.

그러나 서울시 조정원은 단순히 상황을 설명해 준 것이라며 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서울시 조정원 관계자는 “합의 효력이 문제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저희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전달한 것 일뿐”이라며 “이마트24가 합의서에 대해 문제를 삼고 있으니 성립이 안되고 끝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절차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점주가 오해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조정원은 "합의 내용은 당사자간에 정하는 것이지 서울시 조정원이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서울시 조정원 담당자는 “합의서 내용은 당사자들의 자유”라며 “언론 비보도조항을 넣은 게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는 법원이 판단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서울시 조정원의 논리에 따르면 조정원이 보증하는 합의서에는 위법인 내용이 들어가도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얘기다. 더불어 합의 후 합의됐다는 조정을 보증해주는 곳은 서울시 조정원이다. 결국 책임을 회피할 순 없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언론통제를 볼모로 한 합의서는 문제가 있다고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이민석 변호사는 “민법 103조에 따르면 아무리 민사적인 계약이라도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 위반한 계약은 무효다”라며 “이건은 사생활적인 문제도 아니고, 한 마디로 부정한 행위를 알리지 말란 것인데, 결국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니 합의 조항 자체가 무효라고 본다”고 말했다. /문다애기자 dalov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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