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디지털시대, 아날로그 감성을 유지하는 그 무엇… 문구

경제·사회 입력 2015-10-23 17:20:40 연승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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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채트윈의 노트 등 작가들이 사랑한 문구 소개

쓸모없는 풀과 만난 포스트잇

눌린 점토서 영감받은 형광펜 등 책상 위의 도구 탄생 비화도

손편지 느낌, 컴퓨터가 표현 못해 잊혀진 감각·기억을 이야기하다


소설가 김훈은 에세이 '아날로그적 삶의 기쁨'에서 한평생 연필로만 글을 쓰다 보니 잡지사 편집자들로부터 눈총을 받고 산다고 했다. 컴퓨터가 편리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누르면 나오는 그 물건과는 인연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가 연필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연필로 글을 쓰면 내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드는데 이 느낌이 소중하며 이 느낌 없이는 한 줄도 글을 쓸 수 없다고 밝혔다. 김훈이 말하는 내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은 아마도 아날로그적 느낌과 감수성일 것이다. 한글 파일 혹은 워드에 쳐 내려간 글에서는 내 몸이 글을 썼다는 특유의 그 느낌이 묻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삐뚤삐뚤한 글씨, 반듯한 글씨, 흐르는 듯한 글씨 등에는 그 글을 적어 내려 갔던 사람의 몸과 당시의 감정이 배기 마련이다.

책 '문구의 모험'은 문구류라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로 이것들의 역사와 유명인사들과의 에피소드를 하나하나 소개한다. 문구류의 역사와 에피소드가 하나하나 소개되면 우리의 추억도 하나 둘씩 떠오른다. '분노의 포도'를 쓴 존 스타인벡이 작가 생활 내내 완벽한 연필을 찾아다닌 끝에 종이 위에서 활강하며 미끄러지는 블랙윙 602에 정착했고, 헤밍웨이, 피카소와 같이 몰스킨 노트에 작품을 썼던 기행문학 작가 브루스 채트윈은 그 노트 생산이 곧 중단된다는 비보를 접하고는 평생 쓸 100권의 노트를 주문하러 나섰다.

내 몸에 맞아 글씨가 유독 잘 써지는 연필, 볼펜, 노트를 찾아 문구점 곳곳을 돌아다녔던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문구들의 탄생 비화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를테면 스타빌로 형광펜의 납작한 모양은 계속되는 재작업에 화가 난 디자이너가 주먹으로 모형을 뭉개버리는 바람에 탄생했다. 그 납작 눌린 점토 모형에서 영감을 얻은 회사는 그대로 제품을 출시했고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형광펜 '스타빌로 보스'가 만들어진 것이다. 포스트잇은 사용할 곳을 찾지 못하던 '쓸모 없는 풀'이 우연히 메모지와 만나면서 '쓸모 있는 물건'이 됐다.

기술은 디지털로 가더라도 감성은 여전히 아날로그일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이렇게 문구라는 아날로그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전구가 발명되어 사람들은 양초로 집을 밝히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양초는 사라지지 않았다. 용도가 달라졌을 뿐이다. 양초는 테크놀로지의 영역에서 예술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양초를 어둠침침하고 불을 낼 수도 있는 위험 요인이 아니라 낭만적인 물건으로 본다. 레코드 판의 찍찍거리고 불완전한 음질은 CD나 MP3에 비해 오히려 따뜻함과 매력으로 받아들여진다. 문구의 한계, 잉크가 뭉개질 수도 있고, 공책 종이가 찢어질 수 있다는 등의 한계는 그 매력의 일부이기도 하다. 무한히 복제되고 공유될 수 있는 컴퓨터 파일과 달리 손편지는 유일무이한 사적인 물건이다. 포스트잇에 전화번호를 적어두는 일에도 물리적인 것이 담겨 있다. 물리적인 것은 뭔가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한다." 1만6,000원.

연승기자 yeonvic@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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