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 스타시인 공중인 타계 50년만에 세상으로

경제·사회 입력 2015-10-18 20:02:28 박성규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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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리라, 필 바쳐 사랑하리라. 천년 부르다가 쓰러질 목숨의 지평에서. 이제야 열을 퍼부어 나는 사랑하리라…('무지개' 중에서)'.

감각적인 표현과 낭만성으로 50년대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시인 공중인(사진)의 시전집 '무지개(문학세계사 펴냄)'가 사후 50년만에 재출간됐다.

1925년 함경남도 이원에서 출생한 공중인 시인은 1946년 월남한 후 김윤성, 정한모, 조남사 등과 '시탑' 동인으로 활동했고, 1949년 '백민' 3월호에 '바다', '오월송'을 발표하면서 정식으로 등단했다. 이후 소설가 최태응과 함께 한국문화연구소 기관지인 '별'을 편집했으며, 종합잡지인 '신세기' 편집기자, '자유신문', '삼천리' 주간을 역임하면서 당시 지식의 장에서 한 주역을 담당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서울방송국을 통해, 침입해 오는 공산군의 격퇴를 호소하는 애국시를 낭독했고, 지금도 불리고 있는 육군사관학교 교가를 작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존재는 신경림 시인이 지난 2004년 한 특강에서 "50년대에 가장 인기 있는 시인은 공중인이라는 시인이었습니다. 신문에 시를 연재했는데 가판에서 그 사람의 시가 없으면 안 팔릴 정도였죠. 그런데 지금 누가 그를 기억하고 있습니까"라고 말한 것처럼 1965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한국 시문학사에서 잊혀졌다.

공중인 시인의 시를 다시 볼 수 있게 한 이는 공 시인이 '단장초'라는 시에 이름을 거론할 만큼 애정이 각별했던 차남 공명재씨다. 명재씨는 미국에서 경제학 공부를 하고 귀국해 교수생활을 하다 현재 한국수출입은행 감사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부친의 시집을 다시 묶어 세상에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출판사를 직접 물색했다. 명재씨는 "제가 아버님의 시를 읽어봐도 어려워 아버님 시를 좋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를 낸 것은 아니다"며 "그저 아버님께 효도하는 마음으로 이전부터 시를 내드려야지 생각했는데, 이제야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에 출간된 공중인 시집에는 탈고까지 무려 7년이나 걸린 그의 대표작인 장시(長詩) '무지개'를 포함해 당시 시집에 실리지 않은 미발표 육필시 '나의 노래는…'과 '나무' 등 총 76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

명재씨는 "이번 시집을 아버지의 영전에 바쳤다"며 "아버님이 써 놓은 다른 글들도 출간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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