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Story] 윤철호 사회평론 대표

경제·사회 입력 2015-08-31 18:16:22 수정 2015-08-31 18:23:03 박성규 사진=송은석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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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노동운동으로 3차례 구속

합법적 방법으로 꿈 이루고 싶어 출소 후 자연스럽게 월간지 입사

'사회평론 길' 대표직 맡았지만 계속되는 판매부진에 빚만 쌓여

"좋은 책 내려면 재무상태가 우선"… 영어교재 승부, 출간때마다 성공

"경영안정화 바탕 학술서도 제작… 단행본 만드는 작업도 진행할 것"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했던 20대 청년은 제집처럼 감옥을 드나들었다. 각오를 하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수감생활은 심신을 지치게 만들었다. 30대 초반 감옥에서 나온 청년은 감옥에 가지 않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어졌다. 마침 당시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뤄진 상황에서 노동운동을 공개적으로 하는 방식의 하나로 월간지를 내는 흐름이 있었다. 청년은 이렇게 생각지도 않았던 출판계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100여억원 매출을 올리는 출판사 '사회평론'의 경영인이자 국내 양대 출판단체 중 하나인 출판인회의 회장인 윤철호(54·사진) 대표의 이야기다.

지난 1983년 윤 대표는 서울 지역에서 대학생 연합 가두시위를 벌인 혐의로 구속된 이후 1989년 노동운동 사건으로 구속되기까지 총 세 차례나 구속 수감됐다.

1991년에 출소한 윤 대표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전과자라는 '주홍글씨'가 붙어 있어 직장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고 꿈이었던 교수도 '먼 나라' 이야기가 돼버렸다.

시기적으로도 윤 대표가 출소한 1990년대 초는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뤄져 예전과 같은 방식의 노동운동을 할 유인도 크지 않았다. 다시 감옥에 가기도 싫었다. 그런 그에게 당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월간지를 내는 출판계의 흐름은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줬다.

윤 대표가 첫 직장으로 선택한 곳은 월간 '길을 찾는 사람들'이었다. 이곳에서 편집주간으로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 윤 대표는 "출소 후 공개적이고 합법적인 사회운동을 하려고 했다"며 "나와 보니 합법적이고 공개적으로 노동운동을 하려고 월간지를 내는 흐름이 있었는데 그게 '길을 찾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대학생 때 교육선전부장으로 유인물 배포를 맡으며 기획 업무를 했던 그였지만 출판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책은 생각만큼 팔리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운영비조차 마련하기가 힘든 상황이 됐다. '길을 찾는 사람들'과 비슷한 시기에 나온 '사회평론'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사회평론'은 진보적 시사교양 월간지를 내기 위해 교수·문화인·언론인 등 진보적 지식인 400여명이 뜻을 모아 만들어진 회사였지만 경제적 이유로 더 이상 운영이 어려워진 것이다. 결국 1993년 두 회사는 '사회평론 길'로 합쳐지게 됐고 이때부터 윤 대표는 대표직을 맡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회평론 길'은 계속되는 판매부진과 경영악화로 1998년 11월호를 마지막으로 월간지를 휴간하고 단행본 출판 위주로 회사를 재편하게 됐다.

윤 대표는 "매달 적자를 내다 보니 책을 만들 생각을 할 시간을 갖기보다 매일 누구한테 돈을 빌려야 하나 그 고민을 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다행히 1999년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가 출간 이후 종합베스트셀러 1위를 석 달간 기록하며 그간의 빚을 다 갚을 수 있었다.

이 책 덕분에 직원 수는 4명에서 40여명으로 열 배가량 늘어났다. 예상외로 책이 잘 팔리자 윤 대표는 여러 가지 기획을 시도했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시도하는 대로 모두 '망했다'.

2003년까지 그렇게 실패를 거듭하다 보니 직원 수는 40여명에서 15명으로 줄었고 빚은 쌓였다. 이때부터 윤 대표는 본격적으로 어린이 영어교육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안정적으로 회사를 이끌어가기 위해 일희일비하는 단행본 위주의 출판보다는 지속적인 매출이 가능한 학습 분야에 눈을 돌린 것이다. 좋은 책을 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회사의 재무상태가 건전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단행본을 내는 것은 수렵생활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언제나 '다음에 무엇을 내야 하지?'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며 "농경생활이 돼야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출범한 사회평론의 영어 브랜드 'Bricks'는 내는 책마다 성공하며 사회평론의 경영 안정화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윤 대표는 "우리가 만든 영어교재가 중국과 중동에 수출되고 있다"며 "2~3년 지나면 국내 영어교육 시장에서 우리 교재들로 다 채워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8년부터 흑자를 내기 시작한 사회평론은 지난해 매출 90억원을 넘겼다. 직원 수도 60여명으로 늘었다. 24년간 출판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온 그에게 출판사의 존재 이유는 뭘까. "존재할 이유가 있는 회사로 존재하는 게 목표입니다." 윤 대표는 출판사가 돈을 벌기 위한 수단 이상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돈을 벌어다 주는 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필요한 책을 만들자는 것이 윤 대표의 경영 원칙이다. 다양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영어 교재보다 한국인을 상대로 한 영어교재를 만들고 출판 시장에서 '돈이 안 되는' 학술서를 꾸준히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윤 대표는 영어교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독자에게 필요한 단행본을 만드는 작업을 할 계획이다.

그는 "단행본을 단권 단권 생각하지 않고 교양 분야 등에서 고객의 지식정보 확보 욕구를 찾아 시리즈로 만들려고 기획 중에 있다"고 말했다.

"출판사는 독자가 읽고 싶은 책 내놓는게 최우선"


출판인회의 회장 맡아 독서진흥 고심
"정가제, 업계 발전 시킬 것" 기대도


올해 2월 출판인회의 회장으로 선출된 윤철호 대표의 가장 큰 관심사는 독서 진흥이다. 어떻게 하면 책 읽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고 있다.

정책적으로는 기업들이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있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독서경영지수'를 만들어 책 읽기 캠페인을 벌이는 일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윤 대표는 무엇보다 출판사가 독자들이 읽고 싶은 책을 만드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한다. 좋은 책은 알아서 독자들 품에 안긴다는 생각에서다.

윤 대표는 "독서 진흥은 출판인회의에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안"이라면서도 "기본적으로는 독서 진흥 정책보다 출판사가 독자들에게 읽고 싶은 책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모든 도서의 할인율을 10%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 도서정가제에 대해 그는 시행 1년이 안 된 만큼 아직 평가를 하기에는 이르다고 판단하면서도 도정제가 국내 출판산업의 산업적 토대를 바꿔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윤 대표는 "우리나라의 경우 그간 출판산업의 성장동력을 할인 정책 등에서 찾았다"며 "이런 점에서 (할인폭을 제한한) 도정제가 장기적으로 국내 출판산업의 토대를 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He is…



△1961년 부천 △1985년 서울대 철학과 졸업 △1991년 월간 '길을 찾는 사람들' 편집주간 △1993년 사회평론 대표이사 △2011년 출판인회의 부회장 △2013년 출판유통심의위원회 위원장 △2015년 출판인회의 회장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co.kr
사진=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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