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시력 잃은 말년의 보르헤스, 어떤 생각을 했을까

경제·사회 입력 2015-08-28 17:16:28 수정 2015-08-28 19:43:11 최수문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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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은 총보다 강하다'라고 하지만 '말'도 '글'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번에 번역된 '보르헤스의 말(원제는 Borges at Eighty:Conversations)'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현대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는 시력을 잃어가던 말년에 외려 세계를 여행하며 더 많은 사람을 만났다.

보르헤스는 1980년 여든의 나이로 미국을 여행하며 청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군중이라는 것은 환상이에요.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나는 여러분에게 개인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이를 들은 시인이자 철학자로 이 책의 저자인 반스톤은 책에 썼다.

"예전의 사상가와 철학자들은 생각이 움직이는 것이어서 파도 위의 잉크와 마찬가지로 고정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에게 남겨진 현자들의 기록은 대부분 그 시대에 우연히 그들의 말을 받아적고 기록하게 된 익명의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저자는 실제로 보르헤스와 나눈 대화에서 여전히 반짝이는 사유와 정신을 발견했고 이를 하나의 작품처럼 남겨두고자 했다. 이 책은 1976년부터 1980년 사이 진행한 인터뷰 11개를 모은 것이다. 시력을 잃어가던 시기에 대한 담담한 회고뿐 아니라 말년에 이른 보르헤스의 문학, 창작, 죽음에 대한 견해까지 담고 있다.

보르헤스의 작품은 원래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실체와 상상이 뒤섞인 그의 작품들은 문학·철학사에 혜안을 제공했고 자크 데리다, 미쉘 푸코, 움베르토 에코 등 걸출한 옹호자를 낳기도 했다.

오히려 이 책의 인터뷰에서 보이는 그의 말들이 심오하면서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국내에서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와 엮여서 소개되곤 하는 보르헤스지만 "나는 나 자신을 현대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대목도 있다. 자신의 말이 하나의 주장으로 굳어질까 염려하며 "오늘은 그래요"라는 식으로 대화를 마무리 짓는 것도 인상적이다. 1만6,800원.

최수문기자 chs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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