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로… 작품으로… 병풍같은 공간 주인공이 되다

경제·사회 입력 2015-05-28 20:42:22 이재유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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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어둑한 공간 1m 간격으로 설치된 98개의 스피커가 저마다의 소리로 속삭인다. 배우가 빠르게 이동하며 녹음한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대사가 각각 녹음된 그 자리에서 흘러나오고, 98명이 반주도 없이 따로 녹음한 애국가가 두서없이 이어진다. 등 뒤에서 소리치는 연극 대사에 쫓기는 듯한 느낌이 끝나면, 익숙한 애국가의 돌림노래 같은 기괴한 하모니가 이어진다. 익숙함이 불편함으로 바뀌는 가운데, 사실 언어나 기호·시간·제도 등 가치 기준이 사회의 약속일뿐 불안정한 것임을 드러낸다. (김상진 '고지로 간다')

공간을 작품에 끌어들이거나, 오히려 작품이 공간을 새롭게 보게 하는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작품을 받쳐주는 '병풍'이 아니라, 전시공간이 작가의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회화와 영상·사운드·설치 등 다양한 매체가 이 공간에서 시각과 촉각·청각을 함께 자극하고, 고무·자석·전기·주파수 등의 소재로 익숙한 공간 속 잘 느끼지 못하는 에너지의 흐름을 상기시킨다. 서울 삼청동 금호미술관에서는 카입·하지훈·이기봉·김상진 등 9명의 작가가 참여한 기획전 '옅은 공기속으로(Into thin air)'가 열리고 있다. 김수영 작가는 미술관 전면의 패턴을 응용해 입구 유리를 반복적인 흑백 무늬로 채워 리듬감을 살리고, 이를 1층 내부 로비 벽면으로 이어간다.('Invention No.4') 반 층 내려간 공간에는 비닐 커튼 뒤 조명으로 '빛의 폭포'를 만들고 바닥엔 에어튜브를 깔아 시각·촉각을 함께 자극한다.(박기원 '낙하') 또 3개 벽면에 사막과 바다를 연상시키는 영상이 비치는 가운데(카입·김정현 'In the land of nowhere'), 산·계곡 느낌의 울퉁불퉁한 의자 조형(하지훈 'Jari')이 조화를 이룬다. 전시는 8월 23일까지. (02)720-5114.

한편 스웨덴 작가 니나 카넬(36)은 눈에 안보이지만 공간에 분명히 존재하는 에너지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아시아 첫 개인전 '새틴 이온(Satin Ions)'에서 고무·자석·전기·주파수 등을 이용해 표면장력·자기장·중력을 시각화한 작품을 선보인다.

니나 카넬은 "텅 빈 것 같은 전시장은 우리가 못 느끼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겨우 움직임의 파편만 인식할 뿐이다. 무언가 잊혀지는 것, 알맹이가 빠지고 남은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작품의 의도"라고 설명했다. 세숫대야 속 물이 증기가 되어 옆에 놓인 시멘트를 굳히는 '상동곡'(줄곧 비슷하게 빠른 속도로 연주되는 곡), 벽 속의 자석에 연결된 못이 나뭇가지처럼 늘어지는 '가는 것들', 고압의 전류를 석탄가루에 흘려 그 흔적을 보여주는 '여기서 가까이에 - 100만분의 1초'는 각각 증기와 자기장, 전기의 존재를 드러낸다. 특히 서울 근교에서 수집한 통신케이블을 재활용한 신작 '새틴 이온'도 포함됐다. 전시는 8월 9일까지. (02)760-4850.

이재유기자 0301@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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