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하종현 "40여년 단색화 작업… 자기 색깔 내니 이젠 세계가 주목"

경제·사회 입력 2015-04-17 17:16:37 수정 2015-04-17 18:43:12 이재유 사진=이호재 기자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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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초기엔 입체적 추상작업 몰두
당시 경직된 사회·남북 긴장 표현…70년대 들어 거친 마대·철조망 소재
서양미술과 구별되는 독창적 작업
5월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 등 국내외서 단색화 재조명 반가운 일
국내 미술평론가 부족은 아쉬워


단연 단색화 열풍이다. 국내외 가릴 것 없이 이우환·박서보·하종현·정상화·정창섭·윤형근·김기린 등 단색화 대표 작가들에게 주목하고 있다. 지난 2013년 가을 국제갤러리가 영국 아트페어에 내놓은 한국 단색화 20여점이 호응을 얻고 지난해에는 같은 아트페어에서 내놓은 작품이 모두 팔릴 정도로 대성공을 이뤘다. 심지어 장르 영문 표기를 한국어 발음 그대로 'Dansaekhwa'로 표기하며 유럽의 모노크롬 회화나 일본의 모노하(物派)와 구별되는 독자적 장르로 인정받았다. 이 같은 분위기는 올해도 이어진다. 지난달 홍콩아트바젤에서도 한국 단색화 거래가격이 껑충 뛰었고 국내는 최근 2년 새 최고 10배까지 올랐다. 또 오는 5월9일부터 6개월여간 열리는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대규모 단색화 특별전이 열린다. 대표적인 단색화 작가이자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서울시립미술관장을 지낸 미술계 원로 하종현(80·사진) 화백을 만났다. "다음달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열리는 한국 단색화 전시는 세계 미술사에 우리 미술을 등록하는 겁니다. 우리 미술사에 전례 없는 일이죠. 기업이 반도체나 휴대폰을 수출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이건 그와 비교할 수 없는 굉장한 일입니다." 경기도 일산 작업실에서 만난 하 화백은 최근 한국 단색화가 재조명되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상황에 고무돼 있었다. 최근에는 프랑스 세브르국립도자박물관에서 컬래버레이션 제의도 받았다. 한국·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맞아 조선백자를 모티브로 작품을 구상해달라는 것. 성사된다면 1980년대 프랑스 파리에 체류했던 한국 화단의 거목 이응노(1904∼1989) 화백에 이어 두 번째다. 세브르박물관은 그간 앵그르와 피카소, 루이스 부르주아, 구사마 야요이, 피에르 술라주 등 전 세계의 쟁쟁한 작가들과 공동작업을 이어왔다.

◇거친 마대 캔버스에 '독자적 예술세계' 구축=작가가 등단 초창기인 1960년대 몰두한 것은 입체적인 추상 작업. 하지만 주류였던 대한민국 국전에 매달리기보다 아방가르드(전위예술)협회를 설립해 새로운 흐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작가의 즉흥적인 표현을 강조했던 추상예술 경향인 '앵포르멜(informel)', 구체적인 형상 없이 하나의 색조로 화면을 채운 모노크롬 회화의 영향이었다. 유신 체제 아래 늘 검열을 받았던 신문과 인쇄 전 신문을 나란히 쌓은 '신문지'나, 나무 박스 안에 다 끊어져가는 로프를 이어놓은 '관계' 같은 작품으로 당시의 경직된 사회와 남북한 긴장상태를 표현했다.

프랑스 르몽드지 기자인 필립 다장은 그의 초기 작품에 대해 "철사는 마치 육체를 가두고 상처를 내듯이 캔버스를 조이고 뚫는다. 철사가 한쪽 끝에서 다른 끝으로 펼쳐지면서 도처에 억압의 기운이 깔리고 작가와 그의 동시대 사람들은 물론 그 누구에게도 자유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되며 수용소·감옥·노선·군법·선언·전시상황과 같은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런 그가 '단색화'를 시작한 것은 1974년. 그래도 화가로서 평면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이젤에 캔버스를 얹고 서양식으로 그리는 것은 왠지 내키지 않았다. 새로운 소재와 방식을 찾던 중 마대와 철조망 같은 재료가 눈에 들어왔다. 미국에서 구호물자를 담아오고 군부대 주변이라 널린 게 이런 재료였다. 전쟁 당시 전투진지를 구축하는 모래 마대이자 포로수용소 철조망이라는 거칠고 강렬한 소재에 끌렸다. 그는 이 마대 천을 캔버스 틀에 고정하고 뒷면에서 물감을 밀어올린다. 그리고 마대를 뚫고 제멋대로 올라온 물감을 펴 바르고 눌러 찍어 작품을 완성한다.

"보통 한국에서는 제 작업을 서양미술 기준에 맞춰 평가하려 합니다. 캔버스 뒤에서 물감을 밀어넣는 방식을 '배압법'이라고 하는 것도 중국 초상화 기법에서 가져온 잘못된 표현이죠. 거친 마대와 물감, 그리고 제가 만들어낸 합작품입니다. 이제 중국과 미국에 비슷한 기법을 쓰는 작가가 생겼지만 전 40여년째죠."

그는 '한국적인' 단색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굳이 선을 긋지는 않았다. "제 작품 속 색조는 전통가옥의 청기와나 조선백자 같은 친근한 색입니다. 해외에서도 단순한 색과 독창적인 기법에 대한 평가가 좋습니다. 한국 음식과 풍토 속에 살다 보면 '등어리(등의 방언)'가 자연스레 한국적이 되죠. 해외에서도 지역적 특성을 가지면서도 세련된 것을 좋아합니다."

작가가 자주 유럽에 다녀오지만 체류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특히나 미술 유학생이 학위에 전념하다 자기 색깔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해외 작품을) 자주 접해야 촌스러움을 면할 수 있지만 이도 저도 아닌 그림이 돼서는 안 됩니다. 힘들게 따라가 봐야 그쪽에선 흔한 그림이고 한국에선 외국물 먹은 그림 취급 받기 십상이죠."

◇"미술평론가 육성할 레지던시 생겨야"=그는 요즘 미술계에 아쉬운 점이 많았다. 젊은 작가를 육성하는 것만큼이나 한국 미술의 이론적 근거를 만들어갈 평론가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돈이 안 되니 모두 큐레이터로 빠지고 순수 평론이 없어요. 의뢰 받은 글만 쓰다 보니 작가에게 끌려다녀요. 서양엔 '입체파' 하면 정말 많은 작가가 포함되는데 우리는 '단색화' 열풍이라고 해도 제대로 된 문헌 하나 없습니다."

그래서 그가 2000년 제정한 '하종현미술상'은 제4회 때부터 평론 부문도 시상한다. 그래도 아쉬움이 많은 모양이다. "평론 부문에서는 상 받을 사람 찾기가 어려워요. 이제 제가 하기엔 늦었지만 개성 있는 작가와 미술평론가를 육성할 수 있는 레지던시 프로그램 같은 게 활성화됐으면 합니다. 서로 토론하고 발전할 공간이 필요해요. 언론도 미술 평론에 좀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해줬으면 합니다."

정부에 대해서는 비판의 날을 세웠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립미술관장 하나 제대로 못 정하는 무능한 부처입니다. 대학 동창회 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업무능력 기준으로 사람을 써야죠. 좋은 한국 작품을 해외에 선보이고 교류하는 것만 활발했어도 세계적인 작가 서넛쯤은 벌써 키워냈을 겁니다. 작가는 작업에만 열중하고 세계에 알리는 건 정부가 좀 해줘야죠. 지금으로서는 방해만 안 하면 되는 상황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우리 기업인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였다. "예전에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10년 후를 준비한다고 했죠. 저도 다양한 색과 재료를 연구하며 향후 10년 작품 준비를 마쳤습니다. 무한경쟁 시대에 요즘 기업 오너들은 정신적으로 힘들어 힐링이 필요합니다. 오기만 한다면 제가 숙소 잡고 한잔 사겠습니다.(웃음)"

He is…


△1935년 경남 산청

△1959년 홍익대 회화과

△1962년 신상회 공모전 최고상

△1969년 아방가르드협회 회장

△1975년 제1회 공간미술대상전 대상

△1980년 제7회 한국미술대상전 대상

△1985년 제11회 중앙문화대상 예술상

△1986년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1987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1988년 제43회 베니스비엔날레 커미셔너

△1990~1994년 홍익대 미술대학 학장

△1995년 제9회 예술문화대상

△1995~1996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장 및 운영위원장

△1999년 서울시 문화상

△2000년 옥조근정 훈장

△2001~2006년 서울시립미술관 관장

△2007년 프랑스 문화훈장

△2009년 은관 문화훈장



한국 단색화 대표작 70여점 전시… 세미나·퍼포먼스 등 다양한 행사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은


역사적으로나 규모로나 단연 세계 최고로 꼽히는 베니스비엔날레. 다음달 7일부터 시작되는 이 예술축제에서 한국 단색화의 회고전이 열린다. 박서보·정상화·하종현·이우환·김환기·정창섭·권영우 등 한국 단색화 운동의 대표적 작가들의 주요 작품 70여점을 통해 단색화 초기부터 현재까지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기획전이다.

특히 단색화에 대한 전시·연구·출판·세미나·퍼포먼스 등 다양한 행사와 접근을 통해 또 다른 토론을 이끌어내고 그 동력을 촉진하겠다는 의도다. 오는 8월15일까지 석 달여간 진행되는 전시는 벨기에 보고시안재단이 주최하지만 사실상 국제갤러리 주축이다.

전시가 열리는 '팔라초 콘타리니-폴리냐크(Palazzo Contarini-Polignac)'는 15세기 초 건축된 르네상스의 역사적인 건축물. 베니스 남측에 자리한 이 건물은 20세기 초 유럽 아방가르드 뮤지컬의 주요 인물인 폴리냐크 공주의 살롱이었고 스트라빈스키, 에델 스미스가 영감을 받은 장소로도 유명하다.

전시는 3개 층 모두를 활용해 단색화의 역사적 맥락을 보여준다. 그간 연구된 단색화 관련 연구와 도록·포스터·시청각자료 등을 함께 선보이고 참여작가의 토론이 담긴 영상물도 상영한다.

특히 외국 비평가와 큐레이터들이 한국 단색화와 작가들을 통해 연구한 새恝?시각들을 담아 뉴욕의 유명 출판사인 DAP에서 책을 내놓는다. 기존 전시 도록의 수준을 넘어 새롭게 조망되는 단색화에 대한 다양한 국제사회의 관심들을 총망라하게 된다. 필자도 쟁쟁하다. 알렉산드라 먼로 구겐하임미술관 큐레이터와 워싱턴 스미소니언재단 산하 허시혼현대미술관의 멜리사 추 관장, 조앤 기 미국 미시간주립대 미술사학과 교수, 정도련 M+홍콩문화박물관 학예실장, 주은지 샤르자비엔날레 총감독, 제러미 르위슨 전 테이트미술관 디렉터 등이 참여한다.



이재유기자 0301@sed.co.kr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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